1. 포텐셜을 잃고 포지션을 얻는 쪽으로 간다.


2. 중요한건 나자신을 일관되게 끌고갈 인생전체를 관통하는 삶의 룰이다.


3. 탑포지션-짝짓기를 통해서, 손에 쥔것을 버려야 파트너와 악수할 수 있다.


4. 애초에 탑으로 출발해야 한다. 내부에서 자가발전으로는 불능이다. 외부와의 충돌에 의해 내부적인 데미지를 입는 형태로만 가능하다.


5. 마이너스- 한다, 플러스- 된다.


6. 모든 가치있는 것은 어디서 베껴서 온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해적정신을 강조한 이유가 있다. 만남의 순간 충돌의 순간에 복제된다.


7. 열심히하자 x, 막힌데를 뚫자 o, 성공모델제시, 동기부여, 복제.


8. 역할을 계속 빼앗기도 보면 CEO가 되어있다.


9. 흥망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젊은이는 오버해야하고 진보는 질주해야하고, 축제는 화려해야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를 위한 힘을 비축할 수 있다.


10. 나중에 다시 되돌아오는 한이있더라도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대한 가봐야 동서남북의 방향을 분간할 수 있다. 겸양과 절제는 대개 해롭다. 소극적으로 움직이다가 방향감각을 상실하여 기어코 길을 잃고만다. 젊은이는 마음껏 편력하고 인생을 허비해봐야 안다. 그것이 나중에 큰 자산이 된다. 성숙기에 신중하게 행동하다가는 보폭이 좁아지고 동선이 짧아져서 방향판단을 못하게 된다. 청춘 시절에 연애한번 안해보고 고심끝에 고르고 고른 짝이 최악의 파트너이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최악들은 오히려 신중한 사람을 공략하는 테크닉을 연마해놓고 표적으로 삼아 노리기 때문이다.


11. 왜 도적적이고  합리적인 쪽이 결국 승리하는 것일까 그들이 도덕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도전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부도덕하고 비합리적인 쪽은 승부에서 이기면 반드시 멈춘다. 그러나 도덕성과 합리성을 가진 집단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정의는 옳기 때문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기 때문에 이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멈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불의는 옳지 않기때문에 패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기 때문에 패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멈추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12. 자신이 맞서 있는 적을 이겨봤자 소용없다. 상부구조로 옮겨가서 더 큰 적과 싸우면 하부구조의 문제는 저절로 해소된다.


13. 마르크스의 소외는 자기 바깥에서 일어나지만 프로이드의 데미지는 자기 내부에서 일어난다. 자기내부로부터의 요청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내부에서 발동이 걸렸기 때문에 기승전결의 끝까지 가봐야한다. 소외의 극복은 위하여 이지만 초자아는 의하여 이다.


14.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저절로 악역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일신하지 않으면 안된다.


15. 물레방아를 기억하라.


*글을 마치며 (전문 옮김)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는 초신성 관측을 통하여 우주가 척력에 의해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3인에게 돌아갔다.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우주에 인력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힘은 본질에서 척력이라는 사실을 구조론은 30년전에 이미 예견하고 있다. 구조의 대칭원리 안에 답이 있다.


구조론은 세상이 오직 마이너스 한 방향으로만 풀린다는 이론이다. 세상에 플러스도 있고 마이너스도 있지만 감기는 쪽은 언제나 플러스고 풀리는 쪽은 언제나 마이너스다. 총열도 있고 총신도 있지만 방아쇠를 쥔 쪽은 마이너스다. 어떤 팽팽하게 대칭되는 둘이 있을 때 그 둘을 통일하는 제 3의 것이 있으며, 그 제 3의 것으로부터 에너지를 조달받는 쪽이 형님이 되는데, 그 방향은 항상 마이너스라는 것이다. 어떤 문제의 답을 찾으려면 일단 마이너스 방향을 찾아보라느 말이다. 그곳에 정답이 있다는 말이다.


자연계에서 인력은 없고 오직 척력이 있을 뿐이며 우리가 목도하는 인력현상은 두 척력의 밸런스가 맞아 교착된 것이다. 구조론은 정과반, 선과악, 빛과 어둠, 남과 여처럼 서로 대칭되는 것을 한 방향으로 술술 풀어낸다. 전혀 고민하지않고 망설이지 않고 답을 얻어낸다. 전기는 음전자에서 양공으로 이동한다. 양공은 전기가 들어갈 빈자리다. 그것은 단지 포지션에 지나지 않는다. 마이너스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뿐, 그 반대쪽에 대칭되는 무언가 실체가 없다. 그래도 포지션은 있으므로 뭔가 있어 보일 뿐 거기에 대단한 콘텐츠는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여자이며 남자는 없다. 빛은 있고 어둠은 없다. 선은 있고 악은 없다. 정은 있고 반은 없다. 반은 정의 환경이 변했을 때 정이 방향을 바꾸는 과정이다. 남자는 여자중의 일부가 역할을 바꾼 것이다. 빛 입자는 있지만 어둠입자는 전혀 없다. 빛은 절대적인 존재이고 어둠은 주변 환경과 비교된 상대적 개념이다. 실상 어둠은 인간의 마음에만 있는 것이다.


선은 인류의 진보이고 악은 그 진보의 실패다. 엄밀한 의미에서 악당은 없으며 그들은 실상 치료받아야할 환자다. 사이코패스로 태어나도 대부분 악을 저지르지 않고 잘 산다. 다만 그중의 일부가 악을 저지르며 그 이유는 악을 저질러본 경험에 의하여 악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사자가 악한 것은 아니다. 악은 본래 없으나 선은 실제로 있다. 인간이 진보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진보에 참여하는 것이 선이다. 진보는 실제로 있지만 보수는 그 실체가 없다. 대부분 한때 진보에 섰던 사람이 주목받지 못하자 보수로 돌아선 것이다. 진보와 보수가 있는게 아니라 진보와 그 진보의 실패 혹은 진보의 속도조절이 있을 뿐이며, 진보의 실패에만 주목하여 그쪽에다 대고 목청을 높이는 겁쟁이들을 보수라 일컫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로 되어 있고 그 하나가 환경의 베이스 위로 운동하며 자리 바꾸기를 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부단한 주변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환경의 변화를 따라잡지 않으면 저절로 악이 되고 보수가 된다. 칭기즈칸의 경쟁자인 옹칸이나 자무카가 원래 악당은 아니었는데 칭키즈칸이 빠르게 두각을 드러내자 견제하려고 꼼수를 부리다가 저절로 악당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항 때 칭기즈칸의 좋은 동료였으나 칭기즈칸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칭기즈칸과 나란히 가려고 하니 꼼수를 쓸 수 밖에 없고, 꼼수는 언젠가 들통나는 법이니 원하지 않게 풍파에 떠밀려 악역이 되어버린 것이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저절로 악역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일신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둘이 서로 대칭되어 있다면 반드시 그 둘을 통일하는 또 다른 하나가 있다. 지구에서는 밤 다음에 낮이 오게 되어 있지만, 백만킬로 공중에서 보면 그 둘은 동시에 공존한다. 지표에서는 봄 다음에 여름이 오지만 달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지구에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공존한다. 이렇듯 따로 나눠진 것을 합쳐서 한덩어리로 인식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그러나 텍스트로는 도달할 수 없다. 구조의 모형으로 참된 깨달음은 가능하다.


어떤 둘이 대결하며 팽팽하게 맞서 있을 때 그 치열한 쟁투의 현장에서 한 발을 뺴고 객관화된 제 3자의 위치에서 바라보면, 대칭된 둘 중의 하나는 분명한 실체가 있고, 방아쇠가 있고, 제어할 수 있으며, 다른 한쪽은 그냥 포지션만 있고 컨텐츠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선수는 있는데 공이 없으니 드리블은 못하고 그냥 멀뚱하게 서서 위치만 지키고 있다. 거기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빛은 조절할 수 있지만 그 반대편의 그림자는 조절되지 않는다. 이때 실체가 있고, 방아쇠가 있고, core가 있고, 공이 있어서 패스할 수 있는 상부구조 쪽을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가면 원하는 답을 얻게 된다. 그 방향은 마이너스다.


찍어주는 정답을 원하는가? 정답은 마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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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가 저술한 책으로 갈리아 정복후 폼페이우스를 물리치는 시점까지 기록되어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하고 돌아온 자신에 대한 원로원의 부당한 처사에 억울해 했으며 이를 바로 잡고자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들어왔다

폼페이우스를 선택한 원로원은 카이사르의 갑작스런 진군에 놀라 폼페이우스와 함께 그리스로 후퇴하였다

이후 폼페이우스의 근거지들을 차례로 정복하고 마침내 내전을 종식시킨다


내전초기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힘은 카이사르의 열세였지만 정확한 상황판단으로 카이사르는 이를 역전시킨다.


이책의 문장 또한 명료하여 이해가 쉬웠으나 단지 지명이 낯설었다


2000여년 전의 일이 매우 생생하고 차분하게 기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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